공격수 키우던 노인

벌써 40여 년 전이다. 시즌 갓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송라에 내려가 살 때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공격수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키워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키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키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키우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선수 등록 종료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키우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키울 만큼 키워야 공격수가 되지, 유망주가 재촉한다고 이동국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영입 할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키운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선수등록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선수영입 등록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키워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공격수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키우다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키우던 것을 숫제 벤치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공격수를 불러 슛,드리블,헤딩을 시켜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공격수다.

선수등록 기간을 놓치고 다음 등록기간을 기다려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스틸야드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클럽하우스에 와서 공격수를 내놨더니 감독은 이쁘게 키웠다고 야단이다. 지금 로스터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감독의 설명을 들어 보니, 키가 너무 크면 공중볼을 다루다가 

엣날부터 내려오는 스트라이커는 혹 멘탈이 끊어지면 휴가를 주고 보너스로 기분을 풀고고 곧 거친 강도로 훈련을 시키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스트라이커는 멘탈이 한 번 끊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스트라이커에 멘탈을 붙일 때, 

질 좋은 지도자를 잘 붙여서 땀을 흠뻑 내게 한 뒤에 반복 훈련을 시킨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정신개조 한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영입시장을 보고 그냥 부른다. 성적이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경기씩 걸려 가며 정신개조 시킬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적시장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미드필더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공간이해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펄스나인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펄스나인이란 아홉 번 역할을 하는듯 하며 주변에 기회를 주는 선수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타겟맨을 하는지 트레콰르티스타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펄스나인을 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축구를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스틸타카를 만들어 냈다.

이 공격수도 그런 심정에서 조련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공격수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과메기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포항가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스틸야드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공격수를 조련하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홈구장에 들어갔더니 공격수가 상대 수비를 털고 있었다. 전에 수비, 골리를 공격수로 쿵쿵 두들겨서 이겼던 생각이 난다.

공격수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쓰루패스 하는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檮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檮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공격수 키우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원본에서 단어만 바꿔서 써봤는데 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