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축구

[개축미디어]연재 끝.

by 흥실흥실 posted Mar 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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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개축에 관련 된 모든 매체들에 부정적이다. 지면과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각종 스포츠 언론들, 경기가 끝나면 축구 커뮤니티들에 쏟아지는 리뷰글, 다양한 축구 칼럼니스트들.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지나치게 그들의 역량이 너무 과대평가 되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칼럼니스트들은 자신들이 축구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팬일 뿐이다. 그들의 칼럼 내용과 축구에 대한 인식들은 팬들과 비교했을 때, 더 나을 바가 없다. 기자들은 경기와 인터뷰의 맥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글을 다루는데, 언어능력이 의심스러운 기자들도 많다. 인터뷰를 토씨 하나 안틀리고 올리는 게 좋은 인터뷰 기사라고 생각하는 게으름뱅이도 있다.(받아적는 이는 현장에서 들었기 때문에 맥락을 잘 알지만, 읽는 이 입장에선 그걸 모르기 때문에 오독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편집하는 것은 필수다.)


  그들에 비하면 팬들의 분석능력에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특히 전술까지 이해해서 그림과 영상으로 경기의 흐름을 전달해주는 분들. 그들이야말로 미디어계가 필요로 하는 축구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축구에 대한 애정, 그리고 진지함,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경기를 '읽는' 이들에게 한 사람의 축구팬으로서 많은 신세를 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섣불리 그들을 신뢰하고,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의 많은 축구팬들은 축구 선수와 팀, 경기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너무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통계수치로 모든 것을 환산할 수 있는 야구랑은 달리, 축구는 분명한 흐름과 돌발적 변수가 너무 많은 종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선수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평가가 엇갈리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의 다양성이 뚜렷하다. 그런데 한국 축구팬들은 하나의 이데아를 설정해놓고 모든 것을 판단하려한다. K리그가 여전히 저평가 받는 것은 한국 축구팬들의 이 같은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K리그는 EPL이 아니고, 분데스리가도 아니고, 프리메라리가도 아니다. 하지만 자꾸 K리그에게 유럽리그의 모습을 요구한다. 만약 당신이 원빈과 현빈 같은 배우들과 비교 된다면? 그들에 근접하지 못해서 당신이라는 한 개인이 하찮게 여겨진다면, 그건 옳은 일일까? 그런데 기자, 칼럼니스트, 팬들이 만들어낸 모든 미디어들은 그게 옳다고 믿는다. 몇몇 축구팬들은 하이라이트로 축구를 진지하게 분석하려하는데, 정말 멍청한 행동이다. 하이라이트는 경기의 모든 맥락을 제거한다. 한 선수의 플레이 중 가장 훌륭한 플레이만 담은 것이다. 알다시피 축구 경기는 정말 셀 수 없는 많은 플레이의 연속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장면만 보면서 어떻게 전체를 판단할 수 있을까?


  내가 '개축미디어'를 쓰면서 그런 미디어들을 공격하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막나가는 미디어들을 공격하면서 팬들이 매체들을 좀 골라가면서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축구팬들의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하는 생각들과는 다른, 새로운 생각을 던져주고 싶었다. 예전에 한 여자축구팀의 해체를 옹호하고 KT 야구단 창단을 지지하는 뉘앙스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실제로도 나는 이른바 '비인기종목'들로 분류되는 스포츠들은 그냥 생활체육, 취미의 영역로 남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종목에서 한국이 잘나가야한다는 강박을 혐오하고, 모든 종목을 프로화 시켜서 엘리트 체육으로 발전 시키려고 하는 의도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축구는 한국에서 프로화할 의미가 없는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축구 커뮤니티에서 했다간 뭇매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간접적으로나마 '개축미디어'를 통해서 그런 생각에 딴죽을 걸고 싶었다.


  오랜만에 '개축미디어'를 쓴다. 어느순간부터 축구에 대해 딱히 할말이 없다고 느껴졌고, 더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끝 마무리는 지어야한다는 이상한 고집 때문에 뒤늦게 마지막 글을 쓴다.  길고 긴 글을 쓰면서 내가 뭔가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축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사람의 팬이지만, 축구와는 정반대편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축구에 대해 진지하게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싫어하는 '아는 척 하는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전에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도 크풋의 많은 분들은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내 생각을 참 좋게 봐줬다. 길다고 안읽는 어느 카페랑 비교하면 더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특히 roadcat은 내 글에 대한 언급을 해줘서, 나도 존재를 까먹었던 이 시리즈를 다시 떠올리게 해줬다.


  그저 한 사람의 팬으로서 축구를 마주하는 게 즐겁다. '위아더월드'가 아니라 서로 아둥바둥하고 사는 모습이 즐겁다. 그게 당연한데 덕질을 하는 데 너무 신경쓰고 배려할게 많았다. 사실 나는 축구를 보면서 상대를 '까는 것'이 너무 좋다. 북패와 북패충, 전북의 '메뚜기 월드' 유니폼, 축구를 처음 볼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병신 같은 대전(사실 야구의 한화, LG 만큼이나 대전의 허접함은 브랜드화하기 충분하다), 감독을 짜르고 돈을 풀면 우승할 거라고 믿는 수원. 포항이 그들을 '물먹일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희열이 느껴진다. 


  별 생각 없이, 그냥 원초적인 본성에 충실한 덕질로 돌아가려고 한다. 내가 예전의 디씨 국축갤을 좋아했던 건, 디씨 자체가 그런 원초적인 덕질에 가까웠던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친목질을 싫어하는 것도 내가 싫어하는 팀을 까는데 그 팀 팬들 눈치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내가 추구하는 방향도 그렇다. 그냥 할말 다 하고, 진지하지 않게, 망나니 같이 덕질하는 축구팬으로 올 시즌을 즐기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 쓰지도 않은 칼럼은 여기서 끝내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