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고 센치해져서

by 낙양성의복수 posted Jan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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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다시 찾게 되는 가게가 있는 것처럼, 단골 음식점처럼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가 하나 있다.


2000년의 그 시기에 내 어린 나이로는 영화관에서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아직도 아쉬운 일로 남는다.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극중에 인우(이병헌 분)와 태희(이은주 분)가 처음 만났을 때, 우산을 씌워 주던 인우의 셔츠가 절반 넘게 젖어버렸던 모습인지, 태희를 다시 보기 위해서 매일같이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밤이 늦을 때까지 기다리던 모습인지, 전공 수업을 결석하고 조소과 수업에 매일 가 있던 모습인지, 흉상을 들고 가던 태희의 신발끈을 묶어 주던 모습인지, 기어이 국문과 MT를 뒤로 하고 조소과 MT까지 따라가던 모습인지...


그것도 아니면 '앞으로 물건을 쥘 때 새끼손가락을 펴게 될 것'이라고 태희에게 이야기하던 모습인지.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라고 묻던 대근(이범수 분)의 질문에 괜히 내가 머쓱해졌던 것은 어쩌면 그렇게 인우처럼 앞뒤 재지 않고 담배 멋있게 피우는 남자가 좋다는 태희를 위해 담배까지 배우는 그런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었을까. 


고민할 틈도 없이 움직이게 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극중에서 처음으로 싸우고 가버렸던 인우는 '제발 태희가 그 자리에 있기만 하길' 빌었고,

하염없이 비를 맞으면서 기다렸던 태희는 '제발 다시 돌아오기만 하길' 빌었던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족을 하나 달자면 이 둘의 이야기가 30분만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한시간 동안 이은주가 계속 맴돌았다는 것이 더 이 영화를 아름답게 해주는 이유인 것 같고...


......그래서 사실 2005년의 그 사건이 더 아쉽기만 하다.


어딘가 다시 살아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