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축구

순위 2위

by roadcat posted Apr 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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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인천(仁川)에서 본 일이다. 파란 옷 입은 수원빠 하나가 축구장(蹴球場 ; 축구경기 하는 곳)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에 저장된 개클 순위표를 내 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순위표가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축구장 관중의 입을 쳐다본다. 축구장 관중은 수원빠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승점을 계산해 보고 '하―오(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하―오'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순위표를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축구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순위표를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개클 경기 해서 나온 순위표입니까?" 하고 묻는다. 

축구장 관객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순위표를 어디서 훔쳤어?" 수원빠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사설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높은 순위를 내준답니까? 대놓고 하면 조작이네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수원빠는 손을 내밀었다. 축구장 사람은 웃으면서 '하―오'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순위표가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순위표를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순위표를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조작한 것이 아닙니다. 얻어 걸려 딴 승점도 아닙니다. 누가 수원 같은 팀에게 개클 2위 자리를 줍니까? 득점(得點) 1점을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득점 1점 주시는 분도 열 하나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하나 얻은 득점에서 몇 점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득점 을 승점 삼점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네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大洋]' 2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순위를 얻느라고 두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순위를 만들었단 말이오? 그 순위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순위표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 개발공 수원빠들에게 이 수필을 헌정합니다


모티프 : http://www.kfootball.org/board/2235622
모티프 제공자 : @aka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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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공의 길냥데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