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각종 매체들이 월드컵을 겨냥해 많은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나름 국내축구 전문 팀 블로그라고 코를 파며 인터넷 서핑만을 할 수 없어서 ‘특집’이란 명목 하에 잡설을 늘어트립니다.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 길을 걸어가는데 맞은편에 초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소년, 소녀 한 쌍이 보였다. 소녀는 뚜벅뚜벅 걸어가고, 소년은 옆에서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보행 속도를 맞췄다. 그러다가 소년이 무어라 말을 하더니, 처음엔 손사래를 치며 웃기만 하던 소녀가 은근슬쩍 자전거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둘은 휙, 나를 훑으며 지나갔다.
남녀칠세부동석인데. 선조들로부터 전승된 유교사상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하니 무릎을 꿇고 엎드려 두 손으로 가슴을 킹콩처럼 쿵쾅쿵쾅 치고 싶을 다름이었다... 는 에라이 부럽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엔 테레사라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폭력적이었던, 이별 뒤 자살까지 시도한 옛 연인이 자신을 사랑했던 건만은 확실하다고, 옛 연인이 벌인 일련의 행동들이 자신을 사랑했음으로 말미암아 벌여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초등학교 때 ‘슬기로운 생활’을 공부한 나로선 폭력적이고, 자살을 시도하는 것보단 앞서 말한 자전거 소년의 그것이 사랑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테레사의 생각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덴마크 우유에 김현복 씨와 윤창수 씨의 맛이 상이하듯 ‘맛’이 다른 거지, ‘덴마크 우유’란 것은 분명할 것이다. 물론 이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건 정말 나쁜 행동입니다.(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얼마 전 인터넷에서 피켓을 들고 악을 쓰며 소리를 내지르는 브라질 사람들의 사진을 봤다. 지금 브라질에선 국민 대다수가 열악한 공공서비스의 개선에 들어갈 예산이 월드컵 개최에 쓰이는 것에 분노하며, 최근 거의 매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의 시선이 브라질로 집중됐을 때를 노린, 순전히 자신들의 이익취득을 위한 시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건들을 보고 있자면 쓸개라도 씹은 듯 뒷맛이 씁쓸해진다. 지금까지 월드컵을 단순히 국익에 많은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행사로만 생각했지, 그 이면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월드컵이 ‘세계인의 축제’지만, 다른 이들은 월드컵을 ‘세금을 뺏어가는, 쓸데없는 대회’라고 정의를 내릴 수도 있다. 김현복 씨와 윤창수 씨의 덴마크 우유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듯, 사랑에 대한 정의가 모두 다르듯.
아아, 머리 아프다. 정말 어렵다. 안 그래도 멍청한데 가뜩이나 큰 대회인 월드컵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하니까. 그냥 덴마크 우유나 한잔 마셔야겠다. 그나저나 김현복 씨를 마셔야 되나, 윤창수 씨를 마셔야 되나.
글 = 정재영(spego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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