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인 1997년에 이 번호를 달고 프로 데뷔했던 시절이 어제만 같은데…. 어느덧 대전 유니폼을 입고 우승컵을 두 번 모두 들어올린 선수가 됐네요. 팬들이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러주셔도 이젠 민망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눈을 다쳐 외눈으로 프로축구를 휩쓸었던 골잡이 김은중이 대전 시티즌에 두 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지난해 강등의 아픔을 겪었던 대전을 1년 만에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어 K리그 클래식(1부리그)으로 승격시켰다. 6일 대전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그는 장기 레이스로 지쳐 있었지만 얼굴에는 한가득 미소를 담고 있었다.
“대전을 떠날 때,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런데 고향에 돌아와서 제대로 사고를 쳤네요.”
창단 멤버로 2001년 FA컵 우승을 차지한 뒤 2003년 대전을 떠나 베갈타 센다이(일본), FC서울, 창사 진더(중국), 제주 유나이티드, 강원FC, 포항 스틸러스를 거친 그는 올해 초 미국프로축구(MLS) 진출설이 나돌았다. 그런데 그는 친정팀에서 플레잉코치로 새 출발하는 길을 택했다.
김은중은 “MLS 팀과는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11년째 날 기다린다는 한 팬의 절절한 호소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의리를 택하느라 아내와 딸에게는 ‘나쁜 아빠’가 됐다. 김은중은 “사실 미국행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이었다”며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이 강릉에서 반년, 포항에서 반년 지낸 뒤 다시 서울로 전학했다. 대전으로 가려면 또 떨어져야 했는데, 그걸 받아준 가족이 고맙다”고 말했다.
후배들을 위해 출전 기회를 양보하느라 많은 경기(16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친정팀이 승승장구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니 속상할 일도 없었다. 대전 조진호 감독은 “은중이가 후배들을 키워야 한다고 양보하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김은중은 베테랑이 꼭 필요한 시점에선 제 몫을 고스란히 해냈다.
우승의 마지막 고비였던 지난 1일 부천FC와의 홈경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주포인 아드리아노가 징계로 결장해 올해 처음으로 선발 출장한 김은중은 1-0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터뜨렸다. 김은중은 “좀처럼 다리에 쥐가 나지 않는 내가 양쪽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뛰었다. 조금이나마 우승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날 승리는 지난 5일 안산 경찰청과 안양FC가 1-1로 비기면서 대전의 우승을 확정한 승리가 됐다. 김은중은 “지난 1년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날 불러준 팬들에게 보답을 했다는 안도감이 흘렀다”고 말했다.
간절히 바랐던 우승컵을 들어올린 김은중은 이제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지도자로 정식 입문할 것인지 혹은 다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날 것인지 등 세 가지 그림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가족만큼이나 아끼는 대전과 1부리그 K리그 클래식에서 더 뛰고 싶다는 생각에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김은중은 “선수로 뛸 때 가족이 모든 초점을 나한테 맞췄는데, 그게 참 미안했다”면서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가족·구단과 함께 의논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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