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축빠들이 잘못 알고있는 상식하나

by 으사양반 posted May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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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는 일반적으로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라 불리는 명칭의 라이벌 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세계에 라이벌전이라는 개념에서 볼때 바이언과 돌문의 매치가 그 궤를 같이 할까? 라는 의문으로

접근해본다.

 

1. 바이에른 주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의 역사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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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바이에른 뮌헨의 연고지역 바이에른 주와 오른쪽은 도르트문트의 연고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우선 이들의 지역은 같은 연고더비는 아니다. 사실 이 두 지역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긴 하다.

다만 바이에른 지역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감정싸움은 그 역사의 궤를 프로이센과 바이에른 왕국의

경쟁에서 촉발된 감정싸움으로 봐야한다(물론 그 이전에도 없는건 아니었지만..) 다만 바이에른 주의 감정싸움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만 적대적인 스탠스는 아니었다. 한자동맹의 자유도시였던 함부르크와 브레멘도 같았다.

 

1870년 바이에른 왕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통합으로 비스마르크 황제의 독일제국(1871-1918)이 선포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이 성립되었기에 일반적으로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왕가보다

더 권위가 높고 역사가 깊은것으로 알려진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왕가가 무시당한 격이었다. 그 결과

독일제국의 심볼과 황실등 다양한것들이 프로이센 기준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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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바이에른 왕국의 비텔스바흐 왕가, 오른쪽은 프로이센 왕국의 호엔촐레른 왕가의 문장]

 

게다가 1918년 7월 28일에 발발한 1차 세계 대전에서도 독일 제국은 동맹군으로 싸우지만 결국 연합군에 의해

패배하고 엄청난 손해와 함께 독일 제국의 황실의 해체와 식민지의 상실등 전쟁 발발의 책임으로 막대한 배상금등을

부담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바이에른 지역 사람들은 "프로이센 놈들이 싼 똥을 우리가 왜 치워야하나" 라는 식으

불만을 공공연하게 터트렸고, 중앙 정부의 통제를 거부하고 당시 마르크스 주의자였던 쿠르트 아이스너의 주도하에

바이에른 자유 공화국을 건국되나, 쿠르트 아이스너는 이후 선거에서 대참패하고 암살당하게 되고 러시아식 공산주의

성향의 정부도 들어섰으나 결국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규군에 의해 바이에른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품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이 프로이센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던 바이에른 지역 사람들이 오히려 같은 입장이 되버

리는 사건이 생기니 그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이다.

 

바이에른 공화국이후의 혼란기동안 공산주의자 대다수가 숙청되어 우익이 득세하던 바이에른 지역은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하였는데 결국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로 취임하고 난뒤 의회를 해산하게 되고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잘 아는 2차 세계대전을 벌이게 되나, 결국 독일은 또다시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히틀러는 자살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러니 하게도 히틀러를 지지한 바이에른 지역은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공격에 피해를 크게 입지는 않았다. 전쟁기간동안 바이에른 주는 지리적 특성상 연합군의

폭격에 프로이센 지역이었던 베를린이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이나 한자 동맹의 함부르크 지역에 비해

피해는 적은 수준이었고, 오히려 전후 복구 과정에서 바이에른은 베를린에 있던 지멘스와 알리안츠 그리고 작센지역의

아우디 본사를 바이에른으로 옮기게 되면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과 베를린등 프로이센 지역과 한자 지역과의

악연을 더욱더 심화시킨다.

 

2.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

 

사실 위에 언급한 역사적 사건들만 보더라도 지역감정으로 인한 라이벌리가 될수있다.

하지만 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주의 뮌헨이 독일내에서 라이벌리가

되지 않는가 라는 의문점이 나오는데 이 문제는 간단하다.

 

사실 도르트문트에게는 바이에른 뮌헨이 아닌 생사대적의 상대가 바로 샬케04이다. 사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두 클럽은 '레비어 더비'로 유명하며, 실제로 도르트문트 팬들은 바이에른 뮌헨보다 더 적대하는 클럽이 샬케04다.

 

바이에른 뮌헨 또한 1910년대 바이에른 뮌헨을 힘들게 하던 FC 뉘른베르크와의 바이에른 더비

1970년대 분데스리가와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 시절 라이벌리였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와의 매치업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사실 그동안의 분데스리가의 상황 자체가 거대 공룡

바이에른 뮌헨과 그 시대를 주름잡는 클럽들과의 대립의 성향이라 사실 바이에른 뮌헨과 라이벌리를 구성한

클럽들을 보면 그시대에 바이에른 뮌헨을 위협할정도로 성장하는 클럽 vs 바이에른 뮌헨의 구도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간의 부각된 라이벌리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

2)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위상

 

바이에른 뮌헨이 전성기를 맞이한 1970년대 이후로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으로 인해서 많은 분데스리가 팬들은 이러한 바이에른 뮌헨 독주현상이 분데스리가의 몰락을

가져올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것이다. 실제로 도르트문트의 마리오 괴체 이적사건만 놓고 보더라도

오히려 도르트문트 팬들보다는 바이에른 뮌헨을 싫어하는 非 도르트문트 팬들이 더 분노하였다.

 

바이에른 뮌헨을 싫어하며 도르트문트 팬이 아닌 분데스리가 타 클럽의 팬들은 오히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에 클럽수가 적었다면 지금쯤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 또한 없었을것이라며 한탄하기도 하는것 처럼

이 라이벌리의 형태는 그저 바이에른 뮌헨을 견제해줄 히어로를 바라는 도르트문트 팬들이 아닌 다른 분데스

클럽의 팬들이 바라는 열망의 실체인 셈이다.

 

물론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간의 경기는 치열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분데스의 거대공룡 바이에른 뮌헨과

바이에른 뮌헨을 제외한다면 그나마 비벼볼수 있다고 생각하는 도르트문트의 대결이기 때문에 이들 경기의

승자가 그해의 분데스리가의 마이스터 샬레의 주인이 될수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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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데어 클라시커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한건 12-13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대진이 결정되면서 그 시기 유럽축구팬들이 가장 기대하던 챔피언스 리그 첫 엘 클라시코 매치가

성사되지 못한것을 커버하고자 이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간의 매치를 엘 클라시코에 준하는 명경기로

만들려는 언론사와 분데스리가 측의 전략인것이다. 사실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간의 경기는 독일내에서도

더비라고 하기엔 도르트문트의 레비어 더비에 비해서 명분이나 기타 다른것들에서도 부족함이 있기에

이런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분데스리가 연맹에서도 이런 언어를 공식적으로 밀어주는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