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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의 神’이 된 박태하, 조선족 자긍심 깨우다

by 여촌야도 posted Dec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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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69&aid=0000175965

내년 목표요?

박 감독은 국내에서 활동할 때 성실하고 입이 무겁고 능력 있는 ‘코치’로 통했다. 축구대표팀 코치로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2011 카타르 아시안컵 3위를 차지했고 2012년에는 세 살 아래 최용수(현 장쑤 쑤닝 감독) FC서울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일하며 정규리그 우승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만년 코치’라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동기인 황선홍, 홍명보는 물론 후배들이 프로 감독을 할 때도 그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박 감독은 2013년부터 2년 동안 봉고차로 직접 아이들을 실어 나르며 허정무ㆍ거스 히딩크재단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옌볜은 그가 감독을 맡은 첫 팀인 동시에 지도자 인생에 날개를 달아준 곳이다.

2014년 말 처음 옌볜을 맡았을 때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선수들에게 운동장 트랙을 7바퀴 뛰게 했는데 태반이 중도 포기했다. 기본적인 규율도 없었다. 박 감독은 사소한 것부터 바꿨다. 원정만 가면 힘을 못 쓰는 걸 보고 최고급은 아니어도 깨끗하고 음식 잘 나오는 호텔을 잡아달라고 구단에 건의했다. 옌볜 구단은 선수들 급여를 종종 늦게 지급했다. 당연히 줄 임금을 선수들과 ‘밀당’의 도구로 활용했다. 박 감독은 월급 날짜를 정확히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대신 선수들에게는 프로 의식을 강조했다. 잔소리를 귀찮아하던 선수들도 감독 말을 들으니 컨디션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 스스로 변해갔다.

박 감독은 최근 옌볜과 2년 연장 계약했다. 중국의 다른 클럽과 한국 프로축구 몇몇 팀도 러브 콜을 보냈지만 주저 않고 재계약에 사인했다. 다음 시즌 목표를 묻자 그는 “당연히 강등 탈출”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도전은 계속된다. 뭔가 하나 이뤄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말에서 좀 더 큰 꿈이 느껴졌다.